이 글은 NASA의 Apollo 50주년 기념을 위한 홈페이지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과 이미지는 물론, 번역 글에 대한 모든 권한은 NASA에 있습니다. 문제가 될 경우, 모두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케네디의 결정

Image Credit: NASA

1961년 5월 25일,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미의회 특별 합동 회의에 앞서, 10년 안에 미국인을 달에 안전하게 보내겠다는 극적이고 야심찬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우주 경쟁(space race)"에서 미합중국(이하 미국)이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하 소련)을 "따라잡고 넘어서는" 것에 대한 크나큰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처음으로 우주 유영을 한 인간이 되어, 미국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5월 5일에 앨런 세퍼드는 우주 유영을 한 첫번째 미국인이 되었지만, 가가린이 한 것처럼 지구 궤도를 돌지는 못하고 궤도를 벗어난 짧은 비행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소련에 앞서 달성할 확고한 기회를 가졌던 프로그램을 발표하고자 했습니다. 부통령 존슨, NASA 국장 제임스 웹 그리고 다른 관료들과의 대화 이후에, 미국인이 달에 착륙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해볼만한 기술적인 업적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으며, 이는 미국이 실제로 잠재적인 주도권을 잡았던 우주 탐사 영역이었습니다.

1961년 5월 21일, 미의회 합동 회의의 공동 기조 연설에서 발췌한 비디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달에 가는 알려진 방법이 없던 시절입니다. NASA는 그 방법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우주 임무 그룹의 책임자이자 이후 NASA의 휴스턴 유인 우주선 센터의 책임자가 된 로버트 길러스는 "달을 향한 아폴로 원정"에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달에 보낸다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비행 과학에서의 엄청난 발전을 요구했습니다. 랑데뷰, 도킹, 장기간의 무중력, 방사능 그리고 유성체의 위협 모두 알려지지 않은 차원의 문제를 수반했습니다. 우리는 고에너지 수소를 태우는 매우 커더란 새로운 로켓, 신뢰도에 있어서의 진전, 새로운 방식의 스테이징 및 핸들링 그리고 달에 갈 때 발사 윈도우를 정확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제때 발사하는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사람 자체도 전무했습니다. 대통령이 결정한 그 때, 우리가 가진 지식의 저변인 앨런 셰퍼드의 단 15분간의 비행이 전부였습니다. 달 궤도로의 점화, 감속 및 달 착륙, 달로부터의 이륙, 집으로 돌아오는 중도에서의 교정 그리고 지금까지 선체 유도에서 알려지지 않은 정밀도로 수행되는 지구 대기로의 고속 재진입을 포함한 정밀한 기동 작전을 수반한 2주간의 미션을 인간이 정말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일들을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할 뿐만 아니라, 내가 "판정의 해"라고 부르는 그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진행해야 했습니다.

머큐리 프로젝트

케네디 대통령의 발표 시점에, 미국의 첫번재 우주 비행 활동인 머큐리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 중 이었습니다.

1959년 4월 9일에 있었던 워싱턴 D.C의 언론 컨퍼런스에서, NASA는 대중에게 머큐리 세븐을 소개했습니다. 언론과 대중은 곧 그들을 영웅으로 받아들였고, 우주 개척의 새로운 정신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5년 간의 프로젝트 생애 동안, 여섯 번의 인간이 개입된 비행과 여덟 번의 자동화된 비행이 완수되었으며, 이는 인간의 우주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셰퍼드의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결심을 굳혔고 머큐리 프로젝트는 달에 도착하는데 필요한 초기 목표에 중점을 두게 됐습니다.

머큐리 우주비행사들, "최초의 7인". 앞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월리 쉬라, 데크 슬레이튼, 존 글렌, 스캇 카펜터, 뒷열, 앨런 셰퍼드, 거스 그리섬 그리고 고든 쿠퍼. Image Credit: NASA
이 단면도는 우주 임무 그룹이 첫번째 NASA 시찰에서 방문자들에게 머큐리의 탄도 캡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우주비행사 앨런 B. 셰퍼드 쥬니어가 1961년 5월 5일, 그의 비궤도 비행 종료 후 플로리다 동부 부근 바다에서 미해병대 헬리콥터에 의해 구조되는 모습.

머큐리 미션에 관해서 더 알아보기

제머나이 프로젝트

NASA가 더 긴 임무 수행을 하기 위해 좀 더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도록 오리온과 국제 우주 정거장이 돕는 것처럼, NASA는 제머나이 프로그램을 통해 1960 년대와 70 년대에 달에 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정의하고 테스트했습니다. 제머나이에는 4가지 주요 목표가 있었습니다. 우주비행사를 대상으로 (우주에서 2주 간) 장시간의 임무를 위한 비행 능력, 비행선이 지구와 달의 궤도에 랑데뷰하여 도킹하는 방식의 이해, 재진입 및 착륙 방식의 숙련도 그리고 장기간 우주 비행으로 인해 우주 비행사가 받는 영향을 잘 이해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행 중인 두 사람이 탄 제머나이 우주선의 컨셉은 단면도입니다. 제머나이는 아폴로의 방식을 가능케 했으며, 우주비행사를 대상으로 (우주에서 2주 간) 장시간의 임무를 위한 비행 능력, 비행선이 지구와 달의 궤도에 랑데뷰하여 도킹하는 방식의 이해, 재진입 및 착륙 방식의 숙련도 그리고 장기간 우주 비행으로 인해 우주 비행사가 받는 영향을 잘 이해하는지를 테스트하는 4가지 주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머나이 미션에 관해서 더 알아보기

미항공우주국
NASA 담당자: 브라이언 던바